[I/O 19] 기술과 창의성의 조화

Google I/O 2019의 후기 시리즈 1편

본 글에서 소개하는 세션의 다시보기 영상은 여기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연치 않은 발견

I/O 세션들의 다시보기를 본격적으로 뒤져보기 시작한 작년에는 오직 기술 세션들만 눈에 들어왔는데, 그 중에서 나는 당시 웹에 관심이 많았었기에 당시 발표된 시간표에서 웹 관련 세션들만 몇 개 골라서 봤다. 그러다가 올해는 I/O에 직접 참여하다보니 작년보다 시간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서 보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표를 확인하던 중 신기한 것들을 발견했다. 최초로 공개된 시간표에서는 상당수의 세션들이 Livestream되지 않는다는 점1 과, 기술적인 내용들 이외에 각종 업계의 유명 인사들이 초청되어 I/O의 각 무대에서 Keynote 형식으로 발표를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Livestream되지 않는 세션들의 희소성을 자연스레 느껴서 그런지, 본능적으로 기술 세션 위주로 예약했던 것들 몇 개를 정리하고 Keynote 세션들을 다시 예약했다.2 Glen Keane(이하 글렌)의 세션은 그렇게 정리하면서 새로 예약하여 보게된 세션 중 하나였다.

VR… 어디로 갔지?

들어가기 전, VR 컨텐츠들의 현 위치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려고 한다. VR이라는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 그리고 HTC Vibe와 Oculus Rift가 나왔을 때, 세상은 본격적인 VR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올랐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까지 VR은 특정 팬덤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나마 잘 구축된 VR 컨텐츠 생태계를 꼽자면 PlayStation VR3만을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VR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왜 컨텐츠 산업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까?

보통 영화를 제작할 때 제작진들은 2차원 평면 안에서 카메라의 구도와 무빙, 화면 상 인물과 오브제의 위치, 그리고 Shot과 Scene 등 각종 편집을 이용해 자신들이 의도하는 바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지금까지 2차원 평면을 기준으로 문법4 이 정립되어 있었지만, VR 컨텐츠는 3차원 공간에서 스토리를 구성해야하며, 이것에 대한 효과적인 문법, 혹은 요령이 존재하지 않아 기술을 따라잡지 못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5 이번 세션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연필에서 시작한다

글렌은 Walt Disney Anumation Studios(이하 디즈니)의 핵심 애니메이터였으며,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포카혼타스 등 오늘 날의 디즈니를 있게 해준 장본인이다. 그는 먼저 자신이 어떻게 자신의 캐릭터들을 구상하는지를 무대에서 직접 보여주면서 세션을 시작했다.

예를 들어, 그가 미녀와 야수의 야수를 구상할 때, 그가 상상하고 있던 야수의 특징들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슥슥 그리다보면, 완벽히 똑같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야수의 대략적인 모습이 나오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그리고 있는 캐릭터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캐릭터에게 대화를 하면서 그것들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마치 프로그래머들이 자신이 생각했던 논리를 코드로 나타내는 것이랑 유사하다고 글렌은 표현했다.

Source : On Creativity and Technology, with Legendary Animator Glen Keane (Google I/O'19) - YouTube

Source : On Creativity and Technology, with Legendary Animator Glen Keane (Google I/O'19) - YouTube

주요한 차이점은, 그러한 생각을 나타내는 수단이 글렌에게는 연필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그리고 있는 대상을 연필의 촉부터 시작해 자신의 팔을 타고, 결국엔 자신의 내면으로 흐르게 하면서 자신이 직접 느낄 수 있기에 최적의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연필은 캐릭터 프로토타이핑 뿐만 아니라, 스토리보드 구성, 심지어 연필 그림체를 최종 애니메이션의 결과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연필로 직접 그린 인어공주의 장면들을 짜집기하여 만든 동영상으로 대략적인 스토리 구성하기도 했고6, 단편 만화영화인 Dear Basketball에서는 연필이 나타내는 특유의 질감을 스토리에 녹이고 싶어 연필 그림체를 채택했다고 한다. 이는 LA Lakers의 간판 스타였던 Kobe Bryant(이하 코비)가 자신의 시에서 보여준 농구에 대한 열정, 무엇보다 6살부터 Lakers 팀의 선수로 뛰고 싶었던 코비의 순수한 영혼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연필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어떠한 과정이던 간에 한 사람의 창의성을 극대화해주고, 그에 대한 결과물을 아주 잘 나타나게 해주는 도구라는 것을 보여줬다.7

새로운 도전

Source : On Creativity and Technology, with Legendary Animator Glen Keane (Google I/O'19) - YouTube

Source : On Creativity and Technology, with Legendary Animator Glen Keane (Google I/O'19) - YouTube

이러한 글렌의 도전 욕구는 그가 디즈니에서 일한지 40년이 넘어가는 시점 즈음에 시작됐다고 한다. 마치 어두운 곳에서 밝은 빛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다고 한다. 가령, 자신의 아내가 디즈니에서 일하지 않게 된다면 어디에 있을 것 같은지 를 물어봤을 때, 글렌은 구글이었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얘기하고,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얘기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을 하지 않는 곳에 애니메이션을 전파하는 것이 멋질 것 같지 않아?”

그러고선 글렌은 이 일화 이후에 괴테의 말을 인용했다.8

어떤 마음을 먹기 전까지, 그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망설임이 있기 마련이다. 무엇인가를 시작(혹은 창조)할 때의 모든 행동들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근본적인 진리가 있다. 누군가 새로운 것에 대해 확실하게 노력을 하기 시작하면, 그것들을 둘러싼 섭리들도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의 모든 흐름은 결정을 내리는 것부터 시작하고, 그러다보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나기 시작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혹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작해라. 용기 안에는 나름의 기풍, 힘, 그리고 마법이 존재하니, 지금 당장 시작해라

아니나 다를까, 글렌은 Google(이하 구글)의 ATAP6 팀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고, 그들과 같이 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일반적인 애니메이션과 달리 3차원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가야했기에, 서로가 부족한 점들을 가르쳐주고 배우기 시작했고, 그 결과 Duet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이 VR 컨텐츠다

여기까지 들으면서 나는 글렌이 자신의 창의성을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그 능력을 세션의 마지막 부분에서 제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VR 헤드셋을 쓰고, Tilt Brush9 를 이용해 자신이 기획했던 만화영화 인어공주의 한 장면을 재현해냈는데, 이는 직접 확인해보기 바란다.

공식 다시보기 영상에서는 34분부터 확인하면 된다. 다만, 개인적으로 다시보기 영상에서 보여주는 데모의 느낌이 현장에서 봤던 데모의 느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 같아 직접 찍은 영상을 첨부한다.

기술만이 다가 아니다

다시보기 영상에서는 잘라냈지만, 글렌의 시연이 끝나자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하였다. 단순히 그림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그가 인어공주의 한 장면을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3차원) 공간적 그리기10 , 다르게 표현하자면, VR식으로 제대로 그려낸 것이다. 아마 관중들 모두가 글렌이 VR 애니메이션의 정석을 보여줬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어던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세션이 모두 끝나고 나는 이런 의문을 품었다. 만약 글렌과 ATAP 팀이 콜라보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명장면이 나올 수 있었을까? 과연 엔지니어들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Duet과 같이 VR로 보고 싶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글렌의 세션은 기술은 도구로서 그 잠재 능력을 무한히 가지고 있고, VR 또한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엔지니어들에게는 기술력만이 모두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들과 함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더 많은 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한다.

후기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1. 기술과 창의성의 조화 (링크)
  2. 모두를 위한 구글 : 키노트 후기 (링크)
  3. 클라우드 게이밍, 구글이 하면 다릅니다 (6월 22일 공개 예정)
  4. Squoosh로 보는 웹의 미래 (아직 시작 못 함)

  1. I/O가 끝난 현재로서는 대부분(아마 95% 이상)의 세션들이 Livestream되었고, 다시보기로 제공되고 있다. ↩︎

  2. 시간이 지나서 확인해보니, 결국 다시보기 영상 공개로 상태가 바뀌었다. ↩︎

  3. 특히, Resident Evil 4 (혹은 Biohazard 4)가 유일하게 그나마 잘 만들어진 VR 컨텐츠라고 널리 알려진 정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

  4. 항상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통용되는 문법들이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

  5. 학부 중에 들었던 영화 관련 교양 강의의 내용 ↩︎

  6. 다시보기 영상의 7분 40초부터 확인하면 된다. ↩︎

  7. 사실 이 세션의 또 다른 교훈으로는 누구나 어렸을 적의 창의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창의성들은 바로 어렸을 적의 순수함에서 시작된다 는 것이 있지만, 내가 이번 글에서 초점을 두려는 내용의 방향과는 조금 다르므로 본문에선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

  8. 시대적 특성 상 고어체로 쓰여, 번역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 나은 번역이 있다면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

  9. Google에서 개발한 VR ↩︎

  10. (Three-) Dimensional drawing ↩︎